"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 라는 문장이 눈에 박힌다. 던적스럽다? 치사하게 뭐 이런 대사에 이런 단어를 끼워넣냐 김훈 아저씨. 이맛살을 찌푸리며 국어 사전을 검색한다.
[형용사]하는 짓이 보기에 매우 치사하고 더러운 데가 있다.
* 그의 행동은 던적스러워서 괜히 꺼려진다.
* 돈푼이나 있다고 너무 던적스럽게 굴지 마라.
* 바다를 거머쥐기만 하면 이젠 최봉일, 최갑식 부자에게 예전처럼 던적스럽게 알랑방귀 뀌어 댈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한승원, 해일≫
라고 네이버 국어 사전이 친절하게 뜻을 알려준다.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자주 접하면 내 단어가 될 것이고, 아니면 그냥 죽은 단어로 냉동 보관될 것이다. 아, 그러다 잠깐, '-스럽다' 가 붙었으니 이왕 찾은김에 '던적'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냉동상태로 망각의 쓰레기통에 처박히느니, 그래도 '던적'이라는 단어를 알면 살려 쓸 수 있을 가능성도 커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네이버 국어사전은
'던적'에 대한 검색결과가 없습니다.
라며 모른체 한다. 괜시리 화가 난다. "자랑스럽다" 는 있는데 "자랑"은 없는 꼴이다. 도대체 어떤 닭대가리같은 새끼가 '던적스럽다'는 넣어놓고 '던적'은 빼먹었을까. 하긴, 이 어디 '던적'만의 문제겠는가. 조선말큰사전 이래로 국어 사전에 무슨 명료함과 어떤 정교함이 있었다는 소문도 들어본 적 없다. 사전은 거대한 폐기물 처리장, 나는 시체 보관소를 뒤지는 하이에나인 것을.
물론 사전에서 '사랑'을 찾아 '사랑스럽다'의 뜻을 짐작해본다거나, '복'을 찾아 '복스럽다'의 뜻을 헤아려보는 건 사실 멍청한 짓이다. 그러나 미국 사는 와이프 친구 마이클 초이에게 '어른스럽다' 를 설명하면서 '어른'이라는 단어를 설명하지 않는 것 또한 멍청한 짓이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단어 하나 때문에 사전을 뒤적거리고 네이버와 구글에서 용례를 찾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도 따지자면 멍청한 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혹은 그러나, 멍청이들을 위한 국어 사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