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촛불잔치와 진달래 꽃길

#0 이번 '황우석 난리판' 을 보면서, 2002 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1 대한민국 유일의 프로 축구팀 FC 코리아와 '히딩크' 라는 아이콘에 열광하고, "대~~~한 민!국!" 을 연호하는 사람들에게서 병든 민족주의의 등뒤를 엄습하는 파시즘의 징후를 읽어낸 사람들은 그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때와 지금은 엄밀히 구분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축구에 관심 없다거나, 거리 응원을 나가지 않는다거나, 편파 판정 시비에 '좀 공정히 바라봐야 한다' 같은 이야길 한다고 해서 국외로 추방하자느니 삼족을 멸하자느니 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반쯤 '이성을 잃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한번 미치게 놀아보자- 라는 '축제' 였지 지금같은 '증오와 살의의 굿판'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지금과 그때는 같지만 다르다. 미치게 놀다 보니 정말 미쳐버렸다는 건 너무 심한 비약 아닌가?

#2 MBC 앞에서 촛불 시위를 벌인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우리가 '촛불' 이라는 소중한 무기를 손에 쥔 것 역시 2002 년의 일이긴 하다. 허나, 아무리 MBC 앞에서 촛농 떨어뜨리며 S 노릇을 한다 한들, MBC가 비록 M 자로 시작하긴 하지만 매저키스트 브로드캐스팅 컴패니의 약자는 아니잖나. (내 추측으로, 이건, 아무래도, '앞에선 박아주고 뒤에선 싸주는' 고스톱 문화가 만들어 낸 사회 풍기 문란이다) 혹시, 채찍이나 포크를 들고 MBC 앞으로 몰려가는 사람들이 생기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어쨌건, 김영삼한테 페인트 넣은 달걀 던지던 아저씨는 MBC를 검찰에 고발했으며, 방송위에서는 프로그램 중지 명령, 재방 금지 등의 조치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차라리 채찍과 포크쪽이 나아 보인다. 아무래도 PD수첩 폐지 반대 서명 운동이나, 최소한 트랙백 릴레이라도 해야하는 게 아닐까?

#3 한편, 이번엔 좀 더 새롭게 '진달래 꽃길' 이라는 묘한 이벤트도 등장했다. 기증 받은 난자를 셀 때 "무궁화 한 송이, 두 송이" 세어서 "천 송이" 가 마련된 기념으로 진달래 꽃길을 만들었다는데, 정작 사뿐히 즈려밟고 오셔야할 황교수님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버리셨으니, 이 또한 폭소와 눈물이 직교하는 순간이다. 웃다가 눈물이 나는 건지, 눈물을 참다가 웃음이 터지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자를 '꽃' 에 비유하는 천박함은 내 사고 회로 속에선 2차 대전중의 나찌 포스터들을 연상시키는데, (본 적 없다고? '솔로부대' 포스터들이 다 그쪽 포스터들 가지고 장난 친 거니까 궁금하면 찾아들 보시라. 재미있게도 솔로부대 군가로 주로 울려퍼진 노래는 소련 국가인데, 그 또한 무궁화와 진달래만큼이나 서로 상극이었다) 사실 그냥 우연의 일치로(?) 파시즘 증세와 똑같아보일 뿐이라는 정도는 나도 안다. 적어도 '국가 차원에서' 난자 기증이 독려되고 있는 건 아니니까.


by 가짜집시 | 2005/12/06 22:35 | 열린 창으로 | 트랙백(2) | 덧글(12)

트랙백 주소 : http://lunaris.egloos.com/tb/119920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명랑노트' 필!이 말.. at 2005/12/06 22:48

제목 : 어찌 해야 할까..?
고민이다. 역시나 월드컵의 기억이 영향을 주기는 하였던가보다. 월드컵과 이어진 촛불시위가 이렇게 갈무리되는구나. 그저.. 그때의 지식인과 언론에 다시 한번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저렇게 지식인들이 얻어맞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침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박사가 의혹을 두들겨 맞는 것도 자신에게 던져지는 많은 질문들을 무시하고 심지어는 억누르려고 까지 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들의 모호한 태도와 황박사의 모호한......more

Tracked from 외계인 교차점 at 2005/12/07 19:23

제목 : 난자 사뿐히 즈려밟고?
월드컵과 촛불잔치와 진달래 꽃길 요즘 왠만하면 황우석 관련 뉴스는 너무나 정신을 피곤하고 심신을 짜증나게 만들기에 피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온 뉴스면이고 인터넷이고 황우석으로 도배되어 있는 바람에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는 상황. 암튼, 오늘도 기나긴 출근길에 지하철 찌라시를 살펴보고 있다가 '아이러브황우석들이 만들어놓은 진달래 ......more

Commented by 명랑이 at 2005/12/06 22:43
생각같아서는 MBC에 지지 광고라도 넣어주고 싶답니다.
그런데 명랑이 돈이 없네요..
Commented by kritiker at 2005/12/06 22:46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보는 신문기사 열심히 훔쳐봤는데 좌르륵 진달래 꽃길 우리나라 풍토에서 무슨 연구가...기타등등...--;;
Commented by _푸훗_ at 2005/12/06 22:51
증오와 살의의 굿판" 이라는 표현 정말 제대로에요. 이 굿판에서 무당이 지목해서 저주할 대상이 누가 될까요? 완전 흥미진진이에요. 이 박진감과 긴장감은 정말 아무나 연출할 수 있는게 아니겠죠? 깔깔. 아, 미쳐가는 대한민국..
Commented by 프리스티 at 2005/12/06 22:53
진달래 꽃길이라니, 거참;
Commented by 사과조아 at 2005/12/06 23:21
헉, Google에 '황우석 월화수목금금금 라면'이라고 찾으니 젤 첨 뜨는 곳이 여기였는데, 아는 사람 블로그였다니!

잘 43? 요즘 뭐 하고 43?

머, 의사들 집회할 때도 '님을 위한 행진곡' 부르는 세상이잖아.
Commented by sragent at 2005/12/06 23:42
글쎄, 애국가를 부르며 울었답니다. 어떡하면 좋습니까.
Commented by 가짜집시 at 2005/12/06 23:53
사과조아/ 여어 MB 오랫만이네. 나야 대전서 회사 다님서 살지. 뭐 홈피 URL 이라도 하나 박아주지 그랬어. 종종 놀러 오게나.
Commented by 가짜집시 at 2005/12/07 00:02
이야... 재밌는 인연이군요 방명록을 찾다가 못 찾아서 여기다가 남기네요 반가워요 하핫.. 찾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Commented by 가짜집시 at 2005/12/07 01:42
가짜집시/ 어서오세요 도플갱어님 ^^
Commented by 니야 at 2005/12/07 09:19
오늘아침 지하철 찌라시 신문에 그 진달래 난리굿판을 '감동의 순간' 이라고 표현했더군요. 어이는 우주탈출이고, 한숨만 나옵니다 그려.
Commented by 덧말제이 at 2005/12/07 11:29
1번 보니 음... 좀 구별할 필요는 있군요. 사실 저도 2002를 떠올린 사람 중 하나라서...
근데 생각해보니 그땐 이렇진 않았네요.
그때 일은 대상 자체가 즐거움을 주는 건이어서였을까요? 내 즐거움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데야 뭐 상관없어라지만 내게 괴로움을 주는 건 용서못해라고나 할까...
Commented by 카오군 at 2005/12/08 09:03
그 감동의 순간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