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제공자가 서비스를 필터링할 때는-

#0 던킨 사건은 바야흐로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일단 드디어 개념을 장착했는지 해명의 글이 공식적으로 올라왔으며, 블로고스피어에서도 차차로 '신중론' 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한 해명 글 한 조각으로 과연 충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인데, 향후에 '합의'가 되었다는 의문 제기 당사자에게 공식적으로 소송을 건다거나 하는 상황이 오면 또 문제가 달라질 것이다.

#1 적법한 행동이라도, 해봐야 득이 없거나 오히려 손해가 돌아오는 종류의 것들이 있다. 가령 불특정 다수의 블로그를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추적해서 일일이 해당 블로그의 서비스 업체에 글의 삭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는 것. 그게 아무리 회사의 입장에서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장사하는 요령으로는 별로 적절치 못한 것이다. 매장에 온 손님이 시비를 걸 때도 그따위로 대처하진 않겠지?

#2 이번 던킨 사태-에 타이밍 적절하게 올블이 네이버와의 검색 제휴 종료를 선언했다. 골자인즉슨 네이버가 의도적으로 블로거스피어의 이슈들이 정확히 검색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주장인데, erehwon 님의 포스팅을 보면 나름대로 가슴 아픈 '업자들의 사연' 이 담겨있으니 비교해서 읽어볼만 하다.

#3 구구절절한 논리는 다 제끼고,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그래서 딱 한가지다. "뭔가 필터링 되고 있고, 그것이 사용자가 원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요청이나 제공자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면 결과가 필터링 되고 있음을 표시하라. 또한 필터링이 작동하게 된 원인과, 필터링이 해제되는 조건등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라."

#4 가령 이번에 이글루스에서 비공개 처리한 글들을 어떤 다른 사람이 읽으려 한다면, "등록된 포스트가 없습니다" 라고 나오면 안된다는 거다. 포스트가 없는게 아니다. 글은 지워지지 않았고, 지우려고 한 사람도 없다. 서비스 제공자가 원해서 글이 안나오게 된것도 아니고, 단지 누군가가 '명예훼손' 등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제기하였으며, 서비스 제공자는 법률에 의거하여 임시 조치를 취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실을 사실대로 적시해야한다. 메커니즘이 그러하므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가려놓든 지우든 사실 어딘가에는, 누구에겐가는 캐쉬가 남아있고, 제거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정보는 계속 유통될 수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은 가려서 무엇하려는가?

#5 네이버의 검색 결과도 마찬가지다. 뭔가 외부 요청에 의해 특정한 검색 결과들을 의도적으로 출력에서 배제하고 있다면 그 사실을 표시해주면 되고, 그에 대한 세부 정보를 별도로 제공하면 된다. 요란 뻑적한 글은 링크로 걸고 일단 결과에 작은 아이콘 한 두개라도 보여주면 될 일이다. 노현정 사건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네이버가 욕먹지 않으려면 누구의 어떤 요청에 의해 어떤 종류의 글들은 검색에서 못보여주고 있다고 사실대로 밝히면 그만이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지 않기 위해, 법률이 그러하니까, 라는 핑계 속에 마치 그런 글들은 '없는' 것처럼 나타내는 것은 또 다른 불의와 거짓을 낳을 뿐이다.

#6 더 큰 놈들이 오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하고 싶지만 못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나는 최소한을 제안한다. 침묵 속에 어떤 글의 존재를 말소하지 말자. 뭔가를 어쩔 수 없이 가려놓았다면 어쩔 수 없이 가려놓았음을 표시해두자. 검열에 의해 제거당한 기사 자리에, 다른 기사를 넣는 대신 공백을 채워넣었던 종이 신문들의 지혜를 배울 때다.

by 가짜집시 | 2007/05/01 21:59 | 열린 창으로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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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사은 at 2007/05/01 22:59
4번에 매우 동감. 정확하게 알려줘야죠. 음음.
Commented by 만능엔터 at 2007/05/01 23:44
정말 공감합니다.
특히 네이버 검색결과는 정말 욕밖에 안나와서....쩝...
Commented by PRAK at 2007/05/02 00:21
늘 느끼듯 명문입니다. 특히 6번은.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네오아담 at 2007/05/02 01:03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가짜집시 at 2007/05/02 14:00
난 그냥 '일반론'을 말하고 있을 뿐이야. 이왕이면 네이버 대신 다음이나 네이트를 넣었으면 좋았을까? 아무튼 나는 "사용자가 즉각적으로 상황을 인지할 수 있고, 필요한 사람은 세부적인 내용도 알 수 있게 공개해달라" 는 것 밖에 없네. 내가 왜 이런 일반론을 펴기 위해 서비스 정보까지 찾아봐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류의 사건이 있을 때 많은 '오해'가 있어왔고 그게 다 서비스 정보를 안찾아봐서 생기는 건 아니겠지?
Commented by 가짜집시 at 2007/05/02 16:38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해야 할 일이라고 봐. 낼모레가 대선인데 놔두면 아주 꼬라지가 볼만할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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