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0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라고 어떤 광고는 주장했다. 정말로 그럴까, 아마도, 그랬던가.

#1 사건의 시작은 사소한 것이었다. 어느날, 내 PC가 모든 CD/DVD 및 가상 디스크 이미지 파일의 인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아마도 YASU.EXE 라는 이름의 디스크 프로텍션 해제 도구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데, 버전을 올려도 보고 관련 있는 프로그램들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지우고 다시 깔거나 관련 있는 드라이버들을 업데이트하는 등의 삽질을 반복해보았지만...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그리고 OS를 다시 깔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OS를 다시 깔다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나 저지르고 말았다. C 드라이브를 포맷한다는 것을 D 드라이브를 포맷한 것. OS installer 가 인식하는 드라이브 이름과 내가 실제로 사용하던 드라이브 이름이 맞지 않아 생긴 문제였다. 잽싸게 quick format 이 끝났고 이미 OS 설치가 상당히 진행되버리기 시작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reset 버튼을 눌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모든 데이터는 날아갔다.

#2 결국 울며 새로 OS를 깔고 Final Data 로 복구를 시도했다. 다행히 많은 데이터가 살아남아있었지만 진짜 문제는 원래 데이터가 저장되어있던 정교한 디렉토리 구조를 복구할 수는 없었다는 점과, 파일들이 제대로 태깅되어있지 않아 파일명만 보고 데이터의 저장 상태를 원상복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많은 파일들을 도대체 어째야 좋단 말인가.

#3 어쨌든 울며 겨자먹기로 데이터들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파일들은 모두 포기하고, 반드시 살려야할 미디어 파일들만 골라서 (즉 파일 리스트를 종류 순으로 정렬한 뒤 해당 영역만 골라 내서) 다른 디스크에 옮겨담는다. 중간 중간 파일명에 들어간 '?' 때문에 저장이 되지 않는다. (엿같은 Windows다 복구 툴은 훌륭한데)

#4 엉망이 된 세간 살림을 돌보는 수재민의 심정이랄까. 이걸 다 어째야 한단 말인가. 어쨌건 살려두면 나중에 몰아서 정리를 하든 버리든 할 수 있을 것이다. 흙투성이가 된 가재도구들 중에 건질만한게 있는지 수돗물로 물을 뿌려본다. 파이널데이터가 툴이 후진 건지도 몰라 차라리 다른 툴을 써볼까.

#5 최악의 경우엔 건질 수 있는 데이터들도 모두 포기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각오는 할 수 있지만 결심은 쉽지 않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들에 대한 미련이란게, (물론 정말 하드코어하게 모으는 사람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그리 가볍지가 않다. 8년이나 걸려서 하나씩 둘씩 CD로 구웠다가 이 하드로 옮겼다가 저 하드로 옮겼다가 왕창 잃어버렸다가- 하면서 끌고 온 데이터들인데...

by 가짜집시 | 2007/08/13 00:56 | 시시껄렁한 독백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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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7/08/13 06: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7/08/13 08:0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은빛유성 at 2007/08/13 10:30
악몽이군...괴롭겠다.
Commented by 이지호 at 2007/08/13 11:34
안녕하세요..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여기까지 오게되었네요...
많은 좋은 글들 참참히 읽고 있고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개발자의 자료관련되서, 유사하게 인생관련 아래와 유사한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저도 많은 데이터를 14년 동안 끌고 다녔는데, 1년 단위로 CD/DVD로 2개의 복사본씩 저장해 놓지만,
아래와 같은 경우가 더 많더군요... ^^

하루 동안 한 번도 찾지 않은 물건은 1주일 동안 한 번 다시 찾을까 말까이고,
한달동안 찾지 않은 물건은 3달 동안 다시 찾을까 말까이고,
1년동안 찾지 않은 물건은 3년 동안 다시 찾을까 말까한 물건이고,
3년동안 찾지 않은 물건은 빨리 버려라.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이 블로그의 좋은 글들에 동참해 보고 싶어 글 남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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