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간다

#0 2009년도 2/3가 흘렀다. 아침 매미들이 많이 조용해졌다. 지각 더위들이 9월의 교문을 헐레벌떡 통과하고 나면 정말로 여름이 다 지나갈 것이다. 세월, 정신 못차리게 빠르다.

#1 갈 길이 멀고 발 밑이 보이지 않을 수록, 캄캄한 어둠 뒤편의 출구를 향해 향해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여야 한다. 언제 어둠이 걷힌 적 있었는가, 살아서 미로의 끝에 서면 나는 조금 더 자라있지 않겠는가, 그토록 달콤한 물음표를 떠올리며, 자주 꺾이는 무릎을 다독거려야 하는 시간.

#2 들려오는 소식들은 대체로 흉흉하거나 숨 막힐듯 아찔하다. 산성에 갖혀 농성인지 절망인지를 견디던 어느 임금처럼 그저 속절없음에 기댄, 사람들, 어지러움을 견디러 다시 어지러워진다. 문득 아주 긴 여행을 떠나고 싶다. 벌어 먹일 것들이 남아있는 동안엔 다시 떠나지 못할 먼 길, 내가 아는 지구 상에 속하지 않는 풍경들 속으로.

#3 모든 짐승들이 그러하듯 사람도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아 기른다. 그러나 당연한 것 치고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으니, 불임하는 종족에게 번식이란 무엇인가. 당연한 것의 이치를 보기도 전에 당연함과 맞서 싸우는 까닭은 또 무엇인가. 어린 새끼를 보면 물어 죽이고 그 어미와 다시 짝짓기를 하는, 숫사자의 얼굴은 종종 피로에 절어 있는듯 하다.

#4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던 어느 여배우가 영화같은 이야기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별도 지고 꽃도 진다. 여름을 보낸다.

by 가짜집시 | 2009/09/02 13:31 | 시시껄렁한 독백 | 트랙백 | 덧글(0)

3천원

우리 부부가 한달에 얼마씩 mnet.com 에 꼬박꼬박 돈을 갖다 바치는 이유는 순전히 '노래 VS 노래' 때문이다. 마누라야 닭살이 돋든 말든, 남편이 '어느 작은 산골 소년의 슬픈 사랑 얘기' 같은 노래들을 틀어놓고 혼자 히죽히죽 좋아라 즐기고 있노라면, 어김없이 "이건 웬 악취미냐!" 라며 태클이 들어온다. 그리곤 "나 신청곡 있는데- " 라며 댓구가 될만한 노래들을 플레이 리스트에 추가한다. 배틀이 시작되는 것이다. 야- 이런 거 있구나, 오 괜찮네 / 내 취향은 아니구만 하며 주거니 받거니 할 때 까진 좋은데, 실수로 Eric Clapton 이라도 등장하면 노래가 아니라 술잔이 오가는 불상사로 번지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평일' 새벽 한 시에 동네 가게로 맥주 사러 뛰어나가는 사태가 터지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어제도

I will surive, Street life 까진 좋았다. 그 뒤에 괜히 Vonda Shepard 의 I Only wanna be with you 며 Vincent 따위 (모두 앨리의 남자 바꾸기 사랑 만들기 OST에 있다)에다 Madonna 버전의 American Pie 를 얹었던 게 화근이었다. "어이 아저씨! 아저씨들은 이런거 들어 줘야지?" 라며 시비가 붙더니만, 이내 King Crimson이다 Camel 이다 (그래봐야 Epitaph, Long Goodbye 정도지만) 나오더니 급기야는 Pink Floyd 까지 나오신다. 이야- 그래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 쯤은 있는 거죠. 이거 내가 왕년에 우리 옵화들 꼬실적에 쓰던 초식인데 말이지-

하지만 "아저씨" 라면 나도 지지 않는다. 누군 그래봐야 아줌마지만 나는 염색체부터 뇌 주름까지 학실하게 아저씨 아닌가. 나온김에 일단 Blackmore's Night도 찍어주고, 이왕 Long Goodbye 들었으니 Pressure Point 도 들어줘야지. Pink Floyd 라면 난 아무래도 '닭사이드' 보다는 '워리' 렸다. Hey You, 아무렴, 누구나 가슴에 삼천원쯤은 있는 거에요.

하지만 어제 Jackson Browne의 The Load Out / Stay 콤보는 참 괜찮았다는 거지. 아 그러니까, 누나 슴가에도 삼천원쯤은 있는... 거지만서도, 사실 누구에게나 가슴에 삼천원'밖에' 없었던 시절도 있지 않았던가. 우리 몸뚱이가 지금보다는 조금 더 아름다웠던 시절, 가슴에도 삼천원 밖에 없었지만 사실 지갑을 탈탈 털어도 천원짜리 석 장 말고는 나올게 없었던

세월을 어찌 저찌 살아내니 나이도 어느새 서른이 넘었고 결혼도 해버렸다. 한대수 애 돌잔치 한지도 벌써 1년이 훌쩍 넘었고, 산소같았던 그녀, 친절한 금자씨가 시집을 갔대는데도 하나도 놀랍지가 않다. 훈장처럼 펄럭이던 상처도 고이 싸매 속곳 깊숙히 감추어두고, 가끔 허리가 아파 디스크 걱정을 하며 병원에 가면서도, 다들 그래, 그놈의 삼천원짜리 적금 깨고 나니 속이 시원- 하기만 한 모양이다. 인정하고 싶든 하기 싫든간에 외모는 능력이고 중요한 건 모가지 위에 있다- 처럼 소름끼치게 속물스러운 대사를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내뱉을 수 있게 된 지금

그래서 삼천원이 어디 갔는지, 한때 우리의 전재산이었던 그 삼천원은.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장엄한 음악 소리가 있다. 삼천원 삼천원 삼천원~ 삼천원 삼천원 삼천원~ 오 씨발, 그 많던 삼천원이 다 거기 있었구나. 이제 삼천원의 진정한 가치는 맥도날드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빠밤빠빠빠- 이런 젠장, 뭔가 지나치게 중요한 비밀을 우연히 알아버린 김씨 아저씨가 된 기분이 드는 이유가 뭘까?

하지만 이봐 삼천원, I
Want you stay
Just a little bit longer...

by 가짜집시 | 2009/08/27 22:16 | 대괴수 마누라 | 트랙백 | 덧글(2)

신종플루

국민들이 신종 플루 걱정을 가장 덜하는 방법은 속히 이명박 대통령 각하께서 신종 플루 혹은 신종 플루로 의심되는 독감에 걸려서 심하게 앓아눕는 거다. 사람 나고 특허 났지 특허 나고 사람 났나? 아무리 곳간에서 인심 난다지만, 인명을 담보로 미적거리는 건 중도도 실용도 아니다. 개새끼들, 잘 좀 해라.

by 가짜집시 | 2009/08/24 13:48 | 시시껄렁한 독백 | 트랙백 | 덧글(2)

혼잣말

이제 어르신들은 먼저 가시고 노인네들만 남았네. 안녕히, 선생님.

by 가짜집시 | 2009/08/18 17:05 | 시시껄렁한 독백 | 트랙백 | 덧글(0)

I don't twitt

#0 내 블로그 로고 이미지 아래, 오는 사람들 기분 나쁘라고 적어둔 글귀가 있다. 이 블로그의, 나아가 내 블로깅의 모토는 소통이 아니라 단절이다. 나는 글쓰기가 '생각의 도구' 이기를 바란다.

#1 세상엔 신기한 도구들이 많다. 소통에 목마른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작은 공명을 일으킬 수 있기를 기다리며 길고 낮게 우는 소리 굽쇠처럼 인터넷에 진을 친다. 어떤 사람들은 정보를, 어떤 사람들은 소소한 일상을, 어떤 사람들은 평론을, 또 어떤 사람들은 만담을, 저마다 제 소리를 내며 새 도구가 나올 때 마다 우르르 몰려가 커뮤니티를 구성한다. 중심과 주변, 허브와 리프가 생기고, '지나가다' 내지는 뇌 구조가 궁금한 찌질이들도 생긴다. 까불다 다친 사람, 까부는 사람에게 다친 사람들이 다시 짐을 싸고, 활발하게 떠들던 사람들이 갑자기 은자연 입을 다물고, 다시 새로운 도구의 소문이 닥쳐온다. 얼리 어댑터들의 사용기가 훈훈한 소문처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아, 꼭 이야기를 지속해야하는 그 상대가 새로운 도구에 발을 들였다. 나도야 간다.

#2 누군가의 트위터 주소가 인기글에 올랐다.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한다는 건 어쨌든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역시 '유명한' 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일 것이다. 이 난독증의 시대에 커뮤니케이션이란게 뭔지,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 '마이크로 블로깅'이 아닌 것 만큼은 확실하다.

#3 예전에 '미투데이'를 잠깐 썼었다. 잘 만든 서비스인것 만큼은 분명하지만, '낙장불입' 규칙 때문에 화딱지 나서 때려치웠다. 단 한 줄의 글이라도 영속하는 한 글은 글이니까. 결국 나는 마이크로 블로깅과 같은 '가벼운' 글쓰기를 열린 공간에서 늘어놓는 취미를 가지느니, 보다 폐쇄적이고 단절된 글쓰기를 지향하기로 했다. 내 블로그에 덧글 달아서 내 답글 받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은 여기 오는 독자들이라면 다 안다.

#4 그래서 결론은, 트위터든 뭐든 앞으로도 안한다는 거다. 나는 당구도 안치고, 차도 안몰고, 트위터도 안한다.

by 가짜집시 | 2009/08/11 10:31 | 0 1 Nation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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